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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나누미칼럼] 영양지(23)

정재진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3.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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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대(黃堂臺)는 고을의 북쪽 30리 매곡(梅谷)에 있
다. 임진왜란 때 고을의 태수(太守)171)가 이곳에 와서
정치를 펴자 마을 사람들이 돌을 쌓아〔마을을〕지켰
는데, 지금도 그 터가 아직 남아있다.


(원문) 黃堂臺 在郡北三十里梅谷 壬亂郡太守來
此布政 坊人築石以衛之 今遺 尙存


동석(動石)은 고을의 서쪽 50리 팔공산 위 용암(聳菴)
절172) 뒤에 있으며 가히 30명은 앉을 수 있을 정도인데,
한 사람이 밀어도 문득 움직이지만, 천 명이 흔들어도
〔한 사람이 밀었을 때 보다〕 더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민속에 전하기를 새가 스쳐 지나가도 번쩍하고 크게 흔
들린다고 한다. 훈수(塤叟)173)의 시(詩)에서 읊기를
“용처럼 누운 산머리는 마치 마음이 있는 듯
능히 구름과 비를 만들어 백성들을 구제하네
어떻게 그 웅대한 반력(蟠力)174)을 거두어 줄여
힘들게 아이들로 하여금 무겁고 가벼움을 시험하
면서 놀게 하는가” 라 하였다.


(원문) 動石 在郡西五十里八公山上聳庵後 可坐

數三十人 一人推之輒動 千百人搖之不加動 俗傳

鳥掠掀動 塤叟詩 龍臥山頭若有情 能成雲雨濟群生
如何却少雄蟠力 苦被遊兒試重輕


남천(南川)은 고을의 남쪽에 있으며, 모자산(母子山)175)
을 동쪽으로 두르며 흘러 명원루(明遠樓)176) 아래에서 북
천(北川)과 합류하여 동경도(東京渡)177) 를 이룬다.


(원문) 南川 在郡南 出母子山 東遶明遠樓下 與北
川合流 爲東京渡


북천(北川)은 고을의 북쪽 6리에 있으며, 모자산(母子
山) 서쪽에서 발원하여 청통역(淸通驛)178)
청통역은 장수역에 소속된 역으로는 현재 영천시 오
수동에 자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으로 의흥 우곡역
(牛谷驛)과 군위 소계역(召溪驛), 동쪽으로 영천(永川)
청경역(淸鏡驛), 남쪽으로 하양 화양역(華陽驛) 등과
연결되었으며,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
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장수역도 폐지되었다.
남쪽에 이르러 남천(南川)과 합류하여 동경도(東京
渡)를 이룬다. 고을은 두 물(二水)의 양지녘(남쪽)에 있

으며 두 물로〔글자를 만들면〕영(永)179)자가 되기때문에〔고을의〕이름을
영천(永川)이라 한다.


(원문) 北川 在郡北六里 出母子山 西至淸通驛南 與南川合爲東京

渡 邑在二水陽二水爲永 故名永川

 

서천(西川)은 고을의 서쪽 6리에 있으며, 신녕(新寧)
의 화산(花山)에서 시작하여 〔영천의 북천으로〕 들
어온다.

 

(원문) 西川 在郡西六里 出新寧花山 入于永川


동경도(東京渡)는 고을의 남쪽 10리에 있으며, 아
래로 흘러 들어가 금호강이 되고 동쪽으로는 료도(蓼
島)180)가 있다.


(원문) 東京渡 在郡南十里 下流入爲琴湖江 東有
蓼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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