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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통의 보통글밥] 봄

심 지 훈 (경북 김천, 1979.7.8~)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3.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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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 매년 3월 17~18일이면 내 어머니 계신 곳 김천 황계서실(黃鷄書室) 앞마당에는 봄전령 노루귀가 꽃대를 세우고 어른 새끼손가락 첫마디 크기의 꽃잎을 몽글몽글 틔운다. 올해는 흰 노루귀 한무리가 평년보다 보름 일찍 봉오리를 제쳐 세웠더랬다. 황계서실에서 노루귀 만개 소식이 전해진 건 사흘 전이었다. 흰 노루귀는 작년보다 많이 피어났고, 보랏빛 노루귀는 옴팍한 모과나무 밑동을 광배 삼아 부처처럼 올해도 숭어리째 피어났다. 모두 생(生)의 환희요 기적이 아니랄 수 없다.
봄이 왔다. 올봄은 특별나다. 장남 라온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차남 바론이는 다섯 살이 돼 어린이집 2층 ‘형님반’으로 진학했다. 라온이의 등교 동선과 바론이의 등원 동선은 정반대다. 작년까지 형제가 같이 등원했던 일상이 두 쪽으로 나뉜 것이다. 오전 8시 10분에 아파트 건너 학교까지 라온이를 배웅한다. 오전 8시 30분 바론이 등원은 엄마 담당이지만 바론이가 원하면 함께 어린이집까지 갔다가 아내는 회사로, 나는 걸어서 되돌아온다. 오전 9시 아침을 먹는다. 방과후수업이 없는 날은 낮 12시 20분, 방과후수업이 있는 날은 오후 1시 10분 혹은 오후 2시 20분 혹은 3시에 라온이를 마중한다. 라온이가 12시 30분에 마치면 학교 운동장에서 1시간 정도 축구를 한다. 마중하는 아빠는 손에 꼽을 정도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함께하는 아빠는 아주 희귀하다. 집에 오면 1시간 30분 동안 간식 먹고, 유튜브 보고, 국어 연산 수리 영어 문제집 중 택일해 스스로 풀게 한다.(문제집 풀기는 엄마 계획에 따라 1년 전부터 시작한 것이다.) 오후 3시면 태권도장을 간다. 라온이는 태권도를 무척 좋아해 도장에서 2시간씩 연마한다. 나는 두 쪽 난 아이들 생활에 맞추기 위해 새벽 4시에 기상한다. 그래야 내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이 왔다. 라온이는 주말에도 방과후수업을 간다. 국립과학관 수업도 간다. 오후에는 한국마사회에서 주최하는 승마교실도 간다. 모두 아내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너무 과하고 성급한 게 아닌가 싶은데 다행히 라온이는 모두 재미있다고 한다. 다섯 살 바론이는 지난주 인사를 제일 잘한다고 해서 반친구들 앞에서 인사시범을 보였다. 네 살 때도 바론이는 조교처럼 반아이들 앞에서 여러 가지 시범을 보여주었더랬다. 바론이는 원장선생님이 인정한 어린이집 공식 ‘모범 아동’이다. 라온이는 등굣길에 아침마다 만나는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 형누나들에게 배꼽에 두 손 모아 공손하게 인사한다. 나는 등굣길에 만나는 봄꽃들을 라온이에게 소개한다. 매화와 진달래와 벚꽃과 동백, 산수유에게도 손 흔들어 인사하자 한다. 매화나무 아래 핀 이름 모를 진초록 새싹들과 인사할 때는 고개를 양껏 낮추자고 한다. 
봄이 왔다. 봄은 생기(生氣)가 크게 돌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계절이다. 봄은 그리 신명난 인사가 무엇인지 일러주는 계절이다. 봄에는 인사를 잘하자. 우리 라온이 바론이처럼 밝고 명랑하게./심보통 202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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